1920년

1920년 7월 13일 오후 8시 인사동 중앙예배당에 90여 명의 발기인들이
모인 가운데 이승우(변호사)씨의 조선체육회 창립취지서 낭독으로
조선체육회 출범, 이후 1938년 7월 4일 조선체육협회로 합병되면서
조선체육회는 해산, 광복 후 1945년 11월 26일 부활하여
1948년 9월 3일 국호 대한민국에 따라 대한체육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20년

전국체육대회의 효시인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개회식에서
월남 이상재 선생의 시구모습. 당시 1920년 11월 4일부터
사흘간 열린 대회는 서울시내 팀들만 참가하였으며
입장권을 3일 관람요금으로 어른 40전 학생 20전에 발매 하였다.

1921년

1921년 2월 조선체육회 주최 매일신보사 후원으로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의 막이 올랐다.
사진은 1922년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무오축구단 임원들과 선수들의 모습.

1921년

1921년 10월, 조선체육회는 축구에 이어 세 번째 종목으로
전조선정구대회를 개최했다. 제1회 대회는 수송동 보성고보 코트
[현 조계사 자리]에서 열렸다.
17개 팀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루며 전국에 정구 붐이 일어났다.
사진은 1924년 휘문고보 교정에서열린 제4회 전조선정구대회 개회식.

1924년

1924년 5월, 제5회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우승한 배재고보 선수들.
제5회 대회에 이르러 소년부인 소학단 경기가 신설되었다.

1925년

1925년, 제1회 전조선 빙상경기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모습.
한강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앞으로 가는 전진 경기와 뒤로 가는
배진 경기 두 가지 로 열렸으며, 수많은 관중이 모여 경기를 관람했다.
이후 3년 동안 기온 상승으로 얼음이 두껍지 않아 대회를 열지 못했으나 1929년 제5회 대회로 경기를 이어갔다.

1936년

1936년 제 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
일제 강점기여서 일본 선수단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이루어 낸 한국인 최초의 세계 제패였다.

1945년

1945년 10월 27일 자유 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
(제26회 전국체전)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광복을 맞이한 우리 민족의 기쁨이 대회 명칭에도 반영되었다.
개회식에서 기수 손기정이 태극기를 들고 감격의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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